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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운데 머무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
이희녕 2010-06-08 추천 1 댓글 0 조회 743
은혜 가운데 머무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많은 종류의 이름으로 교회에서 예배 의식이 거행됩니다. 그러나 과연 그 모든 예배를 주님께서 일일이 기뻐 받으셨을까? 는 의문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예배에 성공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 4:23)
또한 하나님께서는 제물보다 주님 앞에 깨지고 통회하는 상한 심령을 구하십니다(시 51:17). 그러면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어떠한 것입니까? 제물보다 구하시는 상한 심령은 어떠한 것이며 "신령과 진정의 예배"와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함께 이모저모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해야하는" 의무감에서 하는 것과 "하고싶어 하는" 자발적인 행동에는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천지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최상의 자발적인 행동일까요?

얼마 전에 저의 친정 어머니께서 저의 집에 방문하셨습니다. 미국 생활 28년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가까이 생활하는 가운데 어머님의 삶을 재 조명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노령에 걱정이 되어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로 설거지에, 집안 청소에, 손에 물이 마를 새가 없이, 숫제 서 서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보겠나'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집 안 살림 뿐이라 생각하셨는지, 80세 고령에 비해 저보다도 더 씩씩하게 이 못난 딸을 그저 섬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절대 헌신의 모습 속에서 어머니께서 제게 너무나 값진 보화를 물려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엄마에게서 이 정 답고, 착한 마음을 물려받은 것이었구나!' 자녀를 향한 지극한 정성! 주님 말씀 그대로 자신은 잊고, 자녀를 섬기는 헌신의 본이었습니다. 그 곳에 한치라도 억지는 없습니다. 그저 주고만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제가 감격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 태양에 반사하는 달빛에 불과합니다. 저를 향한 어머니의 맹목의 헌신 그 구구 절절이 감격하는 것 저의 진심입니다. 다땅히 감사해야되기 때문에 그 감격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나 같은 것이 무슨 자격이 있어 이토록 사랑을 받을까! 자식이기에 그저 무조건 사랑하시는 것이지! 어머니를 이토록 감격해하는 이 못난 딸의 진심을 말씀드리니, 저의 어머님께서 얼마나 기쁘하시던지요!

이 속에 바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의 요소가 다 들어있습니다. 자식에게 생명을 내놓는
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의 순간 순간을 돌아보며 감격하는 딸! 하애없는 사랑에 대한 감격이 우리 두 모녀의 가슴을 하나되게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여러 사랑의 모형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하나되어 누리기를 원하는 깊은 사랑의 관계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진실한 친구와의 우정, 요나단의 모습에서 다윗을 사랑하여 자신의 왕자로서의 권리도 기쁨으로 양보하고 다 내어주는 희생을 봅니다. 부모 자식간의 끈끈한 사랑! 서로가 감격으로 서로 헌신하니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자녀로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때와 엄마로서 아이를 사랑할 때 질적으로 다른 것을 배웠습니다. 첫 아이를 대학에 보내놓고 얼마나 보고싶던지 연인에 대한 상사병은 비교가 되지않더라고요.

사실상 아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오히려 엄마가 아이 없는 빈 둥지를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지요. 그 당시는 E-mail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을 때이였습니다. 일년 동안을 거의 매일 Q. T.와 더불어 사랑의 편지를 써보냈습니다. 그 것도 모자라 겨우 동래나 채바퀴도는 서툰 운전 실력으로 2시간 거리를 목숨을 걸고(?) 고속도로도 막 바꿔 타고 아이를 보러 갔습니다.

맨 정신의 제 실력으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잠깐 얼굴 보려고, 좋아하는 음식 싸들고 달려 가 보며 법석을 떨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잊고 대단히 용감하게 해주는 힘이 있더군요. 확실히 받는 사랑보다는 주는 사랑이, 특히 어머니의 자녀를 향한 사랑, 가장 고상합니다.

자식을 향해선 자신을 몽땅 그대로 무조건 바치는 모성애를 경험해보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상상할 수없이 클 것인가 가슴이 절여왔습니다. 도대체 자식이 뭔지! 엄마는 이토록 안달인데 가만두면 일 주일이고 전화 한 통 않고 지나는 녀석, 괘씸하다가도 "엄마"하는 목소리만 들어도 녹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토록 못난 나를 가까이하고 싶어하시는데... 그에 비해 엉뚱한 것에 한눈 파느라 그만 얼마나 우리 주님을 기다리게 해드렸던가! 너무나 죄송한 맘이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부모님이 사랑하는 자녀가 자신의 삶을 기꺼이 의논하며, 나누고 산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싶은 부모에 비해 자녀가 장성해갈수록 비밀이 많아지고 떨어져 나갈 때 얼마나 섭섭하고 힘이 들던지요.

철이 들면서 중요한 삶의 문제들은 꼭 우리와 의논하고, 존중해주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하나님께 감사하던지요. 부족한 부모이지만 어느새 믿음가운데 성숙해져 하나님을 사모하듯 부모를 귀히 여겨줍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게 속 터놓는 만큼이라도 하나님께 내 속을 터놓는다면 우리 주님 얼마나 내가 예쁘실까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어떤 눈에 보이는 행위, 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며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뭘 들었는지 복잡한 마음가운데 예배당 자리 데워주고 오는 것 예배를 구경하고 온 것이지 예배를 드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잘 돌봐주시겠지... 바치는 정성에 비해 교회에 나가 주었으니 복을 요구하는 기대감만은 큽니다. 인생은 참으로 빠르고 짧습니다. 죽으면 다 없어질 세상 것에 쏟는 정성만큼이라도 예배에 성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지성소는 우리 자신의 가슴입니다. 무엇이 마음의 중심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향한 태도, 이웃을 향해 배어 나오는 행동이 예배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예배 때 들은 말씀 남에게 적용하여 비난의 화살과 혈기로 가득 차면 그 날 예배는 실패입니다.

주님의 성품이 삶 속에 배어 나올 때만이 예배에 성공한 것입니다. 마음의 지성소에 주님이 임하시면 우리의 매일의 삶의 현장이 주님의 성전으로 변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복하듯,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듯 사랑으로 섬길 수만 있다면 그 가정은 아름다운 주님의 성전이 됩니다.

존경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부부성전, 자녀들과 함께 누리는 가정 성전, 이웃성전, 직장성전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성전이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 세상의 성전에서 주님과 더불어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구하며 삽니다. 그러다 주일이면 온 성도 교회성전에 모여 주님의 은혜를 다 함께 찬양, 영광 드리고 다시 세상의 성전으로 흩어집니다.

이희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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